나는 왜 기술자가 되었나
프로로그
강의의 4/5정도는 강연자의 주관이 강한 철학적 내용이었고 내게 그리 많은 감동을 주지 못했다. 행복이라는 그리고 욕망이라는 주제에 대해 평소 무심한 편도 아니건만 왜 그리 따분하게 느꼈는지 모를 일이였다. 하지만 어제의 주제-행복,욕망, 그리고 기술자라는 주제로 짧은 글을 이어 볼까 한다.
나의 정체성
나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들은 중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 졌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일까? 무엇을 잘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떠한 일을 왜 해야 하는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모든 행위와 사상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에 내 자신에 대한 혼란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고 정리되지 않고 있다. 인간은 이기적인 인간인가? 이타적인 인간인가? 나는? 이타적 삶을 목표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날들 가운데는 심하게 내 자신이 이타적인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가득한 날들이 있으며 내 스스로 세상과 타협하여 그저 그런 허례허식의 말 뿐인 인생을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자괴감으로 휩싸일 때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그것은 누구도 알지 못하며, 내 스스로가 이미 알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나를 둘러싼 모든 의문들의 정답과 해결책은 내 안에 있으며 하루 하루 그 정답을 위해 노력의 과정을 지속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자 사명이며 그것이 나를 대변하는 단 하나의 캐릭터일 것이다.
행복론
강의 중 행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를 강연자가 청중들에게 물었다. 나는 행복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행복은 소유에서 얻는 것일 수도 있고 무소유에서 얻는 것일 수도 있다. 만족이라는 단어가 행복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겠지만 범죄자의 경우 이것은 만족이라는 단어가 행복을 온전히 대변해 줄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범죄자는 범죄를 저지르면서 만족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데 그들은 마찬가지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인의 만족은 만족으로 그칠 수 있지만 모두의 만족은 행복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행복은 이토록 개인의 만족이 아닌 그가 속한 공동체 내에서 모두가 함께 느끼고 공유하는 만족일 것이다. 행복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군집적인 것이다. 행복의 궁극적인 곳에는 인류평화가 있는 것이다.
욕망론
욕망은 목표일 수 있고 욕심일 수 있다. 전술한 바대로 모든 사상은 양면성을 띄고 있고 그 어느 것도 객관적일 수 없다. 내게 욕망이 강하게 작용하는 욕망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 봤다. 애정욕-이것은 여자를 품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다. 하지만 이를 억제하는 성취욕이 있어 마음 깊은 곳으로 억압하고 있다. 식욕-내게 식욕은 타인과 비교해 봤을 때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성취욕-항상 그 무엇을 성취하고픈 욕구는 내게 가장 강한 욕구로 내면화되어 있다. 이것은 실행욕과 별개의 것이라 생각한다. 성취욕은 일종의 의식이고 실행욕은 행위라는 뜻이다. 실행욕과 성취욕의 괴리감이 작으면 작을수록 주체의 행위는 의식과 합일되어 작용한다. 인간에게 욕망은 올바른 곳으로 향해 있다면 꼭 필요한 것이다. 욕망 없이 행위하는 로봇같은 모습은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다.
기술자의 길
마지막 주제인 기술자에 대해 내게 큰 감명을 주었다. 기술자는 특정분야를 새롭게 이끄는 개혁가이며 사상이 깃든 철학자이며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예술가, 그리고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뜻을 실현하는 자라고 했다. 나는 왜 건축을 택했는가? 바로 이러한 직업적/직군적 매력 때문에 택한 것이 아니던가? 잠시 잊고 있었다. 건축이 나를 이끌었던 매혹적인 것들에 대해 잠시 잊고 있었다. 예술가적 창조성을 항상 갈구해 왔고 과학적 체계성을 항상 추구해 왔던 내게 다시 건축을 위해 걸었던 지난날을 되새기며 다시 다짐한다. 그 끝이 어디건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 소명과 의지를 가지고 나의 건축의 길을 걸으리라.
강연 후기
강연자는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면 자기계발 측면에서 그리고 철학적 측면에서 참 높은 경지에 위치한 위인이라 생각한다.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 선 학생들에게 행복론과 욕망의 철학적 개념을 논하기 보다는 기술자의 길을 걸으며 부딪쳤던 시련과 성취,보람 같은 것들을 강연했다면 더욱 유익했을 강연이 되었을 것이다. 항상 느끼는 것은 강연자가 어떻게 청중들의 눈높이에서 자신이 하고픈 말을 전달하는가 하는 부분이 중요한 것 같다. 그렇기에 한국어는 하나가 아니다. 대학생용 언어, 택시기사용 언어, 등등 다양한 그룹의 특성에 부합한 언어를 갖는 것은 현대인들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그 어떤 외국어보다도 선행되어 체득해야 할 수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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